롱보드

롱보드 겁이 아닌 교훈을 얻었다

zip-note 2025. 6. 27. 00:09

어떤 취미든, 막연한 자신감으로 시작하면 반드시 한 번은 부딪히게 된다. 나는 그걸 정확히 5일 차에 경험했다. 롱보드를 타면서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다는 착각, 무릎 보호대는 없어도 괜찮겠지라는 판단, 그리고 그날 따라 잘 탈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기대감. 그 모든 것이 겹친 날이었다. 결국 그날 나는 넘어졌고, 무릎이 심하게 까졌으며, 며칠간 제대로 걷기도 불편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날의 경험은 나에게 공포보다 더 큰 이해와 배움을 남겼다. 오늘은 내가 보호대 없이 보드를 탔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를 자세히 기록해보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하나의 경고처럼, 또 누군가에게는 위로처럼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롱보드위에서 자신감과 자만은 다르다는 걸 그날 알았다

5일째 되는 날, 나는 처음으로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고 보드를 타는 것에 도전했다. 그동안은 무릎, 손목, 팔꿈치에 보호대를 다 착용하고 연습했지만, 솔직히 말해 점점 더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이젠 넘어지지 않겠지.”
그게 그날 아침의 나였다. 바람이 적당히 불고, 햇살도 따뜻했으며, 평일 오전이라 공원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모든 상황이 완벽해 보였다. 보드에 올라서는 순간도 편했고, 몸의 밸런스도 좋아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 몸은 속도에 올라탔지만, 마음은 따라가지 못했다.

 

순간의 중심 이탈, 그리고 무릎의 비명

보드 위에서 방향 전환을 시도하다가 중심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사실 지금도 왜 그렇게 미끄러졌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바닥 상태는 평탄했고, 갑작스러운 외부 요인도 없었다. 그냥 내가 몸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거였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 무릎이 아스팔트에 직접 닿았다. 그 순간의 통증은 생각보다 강렬했고, 머리가 멍해졌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한동안 가만히 주저앉아 있어야만 했다. 무릎에는 곧바로 피가 맺혔고, 바지는 찢어졌다.

까진무릎

공포보다 부끄러움, 그리고 묘한 고요함

넘어졌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공포가 아니었다.
‘아, 괜히 보호대 안 찼네. 멋 부리다가 다쳤다.’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가 나에게 실망했다. 사실 다친 것보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이 취미를 왜 시작했지? 누굴 위해 타고 있었던 걸까?

 

롱보드 보호대는 기술보다 앞선 선택이었다는 걸 배웠다

그날 이후, 나는 보호대의 존재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단지 ‘넘어졌을 때의 충격을 막아주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심리적 안정감을 유지시켜주는 보호막이었다는 것을.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을 때는 조금 더 과감하게 자세를 시도할 수 있었다. 넘어져도 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반대로 보호대를 벗고 나면, 몸이 경직되고, 움직임이 작아지며, 결과적으로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게 된다.
보호대는 실력 없는 사람의 장비가 아니라, 진짜 실력을 키우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실수는 있었지만, 그 덕분에 나아갈 수 있었다

무릎이 다 나을 때까지 4일 정도 롱보드를 쉬었다. 그동안 몸은 쉬었지만, 마음은 계속 그날을 떠올렸다. 나는 왜 보호대를 안 찼을까, 왜 자만했을까, 왜 그날 무모하게 시도했을까. 그런데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친 건 잘못이지만, 돌아봤기 때문에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실수는 나를 다시 시작점으로 데려다줬고, 그 자리에서 나는 겸손하게 다시 배울 준비를 하게 되었다. 어떤 취미든 꾸준히 이어가려면, 그 과정 속에서 ‘내려놓음’과 ‘다시 시작함’을 반복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여전히 롱보드를 잘 타지 못하고, 아마도 앞으로도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다시 일어나는가에 있다. 보호대를 다시 착용하고 연습을 시작한 지금, 나는 겁이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롱보드를 타고 있다. 그날 다친 무릎은 이제 거의 나았지만, 그 경험이 남긴 배움은 여전히 나를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이 작은 교훈들을 하나하나 모아가며, 보드 위에서 조금씩 성장해갈 것이다.